비트코인은 좋은 화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는가?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가 좋은 화폐로서 기능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5가지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습니다.

  1. Durable:
    오랜 시간 사용해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 닳거나, 녹슬거나, 형태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2. Portable:
    가치에 비해 무게나 크기나 너무 커서는 안된다
  3. Divisible:
    더 작은 단위로 나누거나 큰 단위로 합치는 것이 용이해야 한다.
  4. Fungible:
    동일한 단위의 화폐간에 같은 가치로 교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5. Intrisic Value:
    내재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화폐로서의 가치와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후 학자들은 여기에 한가지 중요한 특성을 다음과 같이 추가했습니다.

  1. Scarce:
    수량이 제한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폐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류 역사상 있어왔던 댜양한 화폐 형태들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조개껍질

조개껍질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화폐의 형태였습니다. 휴대가 편리하고 바닷가에서 먼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희소성도 있어서 화폐로 사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깨지기 쉽고 작은 단위로 쪼개거나 큰 단위로 합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화폐는 곧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 Durable – x
  • Portable – Good
  • Divisible – x
  • Fungible – x
  • Intrisic Value – x
  • Scarcity – x

 

2) 토지

토지는 자원이 유한하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재산으로 인식하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휴대성은 0점이었지만 땅문서라는 형태로 보완할 수는 있었습니다. 내재적 가치도 확실하고 유한한 자원이므로 Scarcity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Fungible입니다. 같은 크기의 땅이라도 땅의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좋은 땅과 나쁜 땅이 구별되기 때문에 재산으로서는 좋았지만 화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작은 단위로 나누거나 큰 단위로 묶는 것은 가능하지만 용이하지는 않습니다.

  • Durable – Good
  • Portable – x
  • Divisible – x
  • Fungible – x
  • Intrisic Value – Good
  • Scarcity – Good

 

3) 고대 동전

최초의 제대로 된 화폐는 아마도 고대 동전이었을 것입니다. 휴대성과 내재적 가치 면에서 합격점에 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닳아버리는 문제는 다소 있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전은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대 동전의 약점은 더 작은 단위로 나누거나 큰 단위로 합치는 것이 불가능해 큰 액수의 거래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문제점이 노출되게 됩니다. 위조의 문제도 생깁니다. 주조기술을 가진 다른 사람이 위조 동전을 만들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는 희소성을 나쁘게 만들어 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게 됩니다.

  • Durable – Fair
  • Portable – Good
  • Divisible – x
  • Fungible – Fair
  • Intrisic Value – Good
  • Scarcity – x

 

4) 금

금은 인류가 발견한 화폐의 형태 중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구성이 뛰어나 오래 지나도 가치가 그대로 보존되고,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작은 단위로 나누거나 합쳐서 큰 덩어리로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희소성은 완벽에 가깝습니다. 내재적 가치도 뛰어나 지금도 화폐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휴대성인데 너무 작은 단위나 너무 큰 단위의 금을 이동하는 것이 어려워 대체 화폐를 만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 Durable – Good
  • Portable – x
  • Divisible – Good
  • Fungible – Good
  • Intrisic Value – Good
  • Scarcity – Good

 

5) 법정화폐(달러)

법정화폐, 그중에서도 달러는 금이 가진 화폐로서의 속성을 이어받으면서도 금의 약점인 휴대성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달러는 금본위제가 기본이었습니다. 금고에 일정액의 금을 보유해 놓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만큼만 달러를 발행하는 것입니다. 달러 자체에는 내재적 가치가 없었지만 금을 연동시킴으로써 이를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1972년까지는 달러를 보유한 사람은 누구나 금 1oz 당 35달러의 비율로 금을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2년 이후 미국은 그 약속을 깨버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달러는 금과 연동되지 않고 무제한으로 발행할 수 있는 화폐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희소성도 약화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약점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문제가 터져나온 바 있습니다. 국가 주도의 화폐 개혁이나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고 시민들은 자신이 쌓아온 소중한 재산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일들이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법정화폐 달러가 전세계인이 사용하는 기축통화로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경제가 망하지 않는 한 달러는 사용될 것이며 이미 전세계에 뿌려진 엄청난 액수의 달러가 볼모가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러를 비롯한 법정화폐가 가진 Scarcity 문제는 앞으로 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비트코인이 생겨난 것은 경제 안정을 시킨다는 명분으로 Federal Reserve에서 무분별하게 달러를 찍어내는 일이 발생한 사태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Durable – Good
  • Portable – Good
  • Divisible – Good
  • Fungible – Good
  • Intrisic Value – x
  • Scarcity – x

 

6) 비트코인

디지털 암호화 기술을 바탕으로 발명된 비트코인은 변하지 않고 전송이 매우 용이하며 분할 가능하면서도 수량이 제한되어 있는 매우 이상적인 형태의 화폐로 탄생하였습니다. 특별히 비트코인은 법정화폐가 지니고 있는 Scarcity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발행량을 2,100만개로 제한했습니다. Intrisic Value가 없다는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이는 달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차이가 있다면 달러는 이 문제를 Federal Reserve에서 보증하는데 반해 비트코인은 수학적 알고리듬이 이를 보증하는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 Durable – Good
  • Portable – Good
  • Divisible – Good
  • Fungible – Good
  • Intrisic Value – x
  • Scarcity – Good

사실상 Intrisic Value라는 것은 이 화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 화폐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보장을 제공해주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비트코인이 더이상 화폐로 사용되지 않을 경우에 필요한 최소한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비트코인이 계속 사용될 것이라는 보장만 있다면 생략해도 되는 개념이라는 뜻입니다. 법정화폐 역시 Intrisic Value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법정화폐가 화폐로서 기능하는 것은 정부가 이를 보증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비트코인 역시 비트코인이 지속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된다면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어떻게 지속적인 사용이 보장될 수 있을까요? 비트코인의 코어 코드는 누구나 제한없이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고 어느 한 국가에서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전세계 사람들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디에선가는 비트코인 코어 노드를 운영하는 곳이 있을 것이고 최소한의 서버만 운영되고 있어도 비트코인 시스템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채굴 보상이 줄어들거나 비용이 너무 올라가면 비트코인 채굴은 중단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채굴 보상이 줄거나 비용이 늘어나서 채굴을 중단하는 서버가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난이도도 하락하면서 남아있는 채굴 노드들의 채산성이 올라가게 되므로 이는 근거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화폐의 3가지 기능

이처럼 비트코인은 좋은 화폐가 가져야 할 특성은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현실 세계에서 화폐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Medium of Exchange (교환의 매개체)
  2. Store of Value (가치의 저장 수단)
  3. Unit of Account (가치의 척도 또는 계산 단위)

현재 비트코인은 이 3가지 기능을 매우 제한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Medium of Exchange – Poor

비트코인의 교환 수단으로 사용되는 가장 큰 분야는 암호화폐 거래 분야입니다.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은 거의 기축통화의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암호화폐 전반에 대한 수요는 비트코인의 수요로 이어집니다. 일반적인 분야에서의 사용은 아직 미미합니다. 비트코인을 직접 거래 대금으로 받아들이는 매장이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가격의 변동폭이 너무 큰 것이 거래 수단으로 사용을 막고 있고,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실제 사용하기 보다는 보유하려고 하는 욕구가 더 큰 상황입니다.

2) Store of Value – Fair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가격 변동폭이 관건입니다. 초기 비트코인을 보유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가치가 폭등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높은 가격에 구입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것입니다. 금이나 달러도 시장 상황에 따라서 어느 정도 가격 변동이 있으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Unit of Account – Poor

가치의 척도로서의 기능은 현재 암호화폐 거래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알트코인 가격을 사토시(1억분의 1BTC)라는 단위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거래 분야에서는 사용예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앞서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가격 변동폭이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가격의 변화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현재는 앞으로의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러한 3가지 기능 모두가 제한되고 있는 것이 큰 숙제입니다.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 시점의 BTC/USD 가격을 기준으로 정산하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대금을 받는 매장의 입장에서는 비트코인으로 결제를 하더라도 받는 것은 달러로 정산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방편일 뿐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비트코인 가격의 안정화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매우 안정화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대중적으로 많이 분포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가격이 더 상승할 여지가 매우 큽니다. 수년이 지난 후 비트코인도 결국 어느 정도 선에서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가격도 안정화된다면 비로소 화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크레딧 카드가 대중화되는 데에도 5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걱정해야 할 더 큰 문제는 법정화폐 쪽입니다 2008년 겪었던 금융위기는 시작에 불과하고 더 큰 제2, 제3의 금융위기가 도래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아니 어쩌면 제2의 금융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기존의 법정화폐 시스템이 붕괴하는 대혼란의 시기에도 비트코인은 금과 함께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주목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