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혁명과 가치의 인터넷

Northwest Passage Ventures사의 CEO이자 [블록체인 혁명]의 공동 저자인 알렉스 탭스콧은 블록체인 기술을 가리켜 다음 세대의 인터넷, 소위 가치의 인터넷이라고 피력했습니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비유적인 표현이면서도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4년 여름, 필자는 소수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World Wide Web과 HTML을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몰랐고 그나마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의 사람들도 겨우 워드프로세서나 Lotus 123(지금의 엑셀과 같은 프로그램) 같은 프로그램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인터넷 접속도 지금과 같은 DSL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모뎀을 사용하여 초당 9.6Kbps의 속도로 접속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 사셨던 분이라면 AOL이나 Earthlink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던 기억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당시 World Wide Web을 강의하면서 언젠가 이것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 그 예감은 현실이 되어 세상은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버렸습니다. 정보의 바다라는 별명처럼 인터넷은 소수의 권력자와 재벌에게 집중되었던 정보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바꿔바렸습니다.

사실상 고대로부터 모든 지배 권력들은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그 우월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양반과 그렇지 않은 상놈으로 계급의 차별이 있었고 이러한 불평등과 독점 구조를 허물기 위해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보를 독점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권력자들의 횡포로 정보의 공유가 가로막히고 발전이 더디어지기도 했지만 세상은 점차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로 발전해 왔습니다. 인터넷의 대중화와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정보의 독점 문제가 해소되었고 정보의 바다 인터넷은 민주화와 인권 신장이라는 커다란 가치를 실현하는데 큰 공로를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정보의 공유는 사회적 정의를 바로 잡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진정한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부의 독점과 경제 권력의 독점은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의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보”는 이른바 독점에서 벗어났지만 “가치”는 여전히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기 떄문입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는 그들이 가진 능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라는 사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해결할 명쾌한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어 자본을 소유한 자와 자본을 움직이는 권력자가 하나가 되어 그나마 노력하는 자들이 받아야 할 결실까지 앗아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태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2008년의 금융 위기입니다. 일부 소수 금융권력이 저지른 탐욕의 결과는 엄청난 후폭풍을 낳았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선량한 시민들의 부담으로 지워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단행된 무분별한 화폐의 발행으로 그들의 실수를 덮어버리고 지나간 것입니다.

블록체인이 혁명적인 이유는 바로 가치의 인터넷이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금융권력에 지배당하지 않는, 미들맨이 부당한 이익을 독점하지 않는,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기록되고 위조될 수 없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이 모든 투명한 시스템을 이룰 수 있는 핵심이 바로 분산 원장 시스템(DLT: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입니다. 분산 원장 기술은 정교하게 설계된 컴퓨터 알고리듬을 통해 중간자가 없이도 투명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니다. 중간자가 독점하던 이익은 시스템에 참여하는 노드가 기여도에 따라 고르게 분배됩니다. 일반 사용자는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고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가치의 분배가 고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 엄청난 혁명적 변화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블록체인의 개발로 이러한 경제적 평등이 지금 당장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종 투기 세력과 폰지 사기, 스캠 등으로 시장이 혼탁한 상황이고 규제 당국은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아수라장도 이런 아수라장이 없습니다. 한 달만에 수십배의 가격 상승을 맛본 투기 세력은 펌핑과 덤핑으로 가격을 교란하고 해커들은 한 순간에 엄청난 양의 코인을 훔쳐가도 손을 쓰지 못합니다. 그나마 이러한 시장에 참여하는 것도 돈이 있는 사람이나 가능하기에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불평등의 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현실과 이론의 괴리가 엄청나게 커 보이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과거 인터넷이 발전해 온 역사를 떠올려본다면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시절 인터넷의 폐혜를 떠올려보면, 각종 불법을 조장하는 사이트들로 인해 마약과 무기 거래,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포르노 비디오, 익명성을 무기로 한 무자비한 인권유린, 불법 음원 다운로드와 저작권 침해, 대량 댓글작업을 통한 여론 조작 등 사회적인 해악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스스로 장점을 살려가며 단점을 줄이려는 전사회적인 노력으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누구도 위와 같은 해악 때문에 인터넷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지않고, 설사 그러한 주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벼렸습니다. 결국 인터넷이든 블록체인이든 이것을 사용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인류 공통의 노력의 산물이고 인터넷을 성공시킨 동일한 인류가 만들어갈 블록체인 또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말도 안되는 정책이라고 생각되는 한국의 게임 셧다운제(청소년은 자정이후에는 인터넷을 못하게 하는 법률)나 인터넷 실명제(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려면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로 실명확인을 해야 하는 제도)등도 그 당시에는 사회적 지지를 받았던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각종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고 이를 통해 사회적인 컨센서스를 이루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면서 안정화된 것입니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은 초창기이고 문제점이 효용보다 커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여러가지 정책의 혼선을 빚을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도 아직은 초창기라 해결해야 할 난관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높은 가격 변동폭과 확장성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기술이 성숙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오는 엄청난 사회적 효용과 결과물을 인류가 점차 경험하게 된다면 세상은 또다른 차원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문제를 발견하고 끝없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해결해 나가는 사회는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지금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인류가 발전해 온 방향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대기업들과 대학들이 이러한 블록체인의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저마다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어떤 이들은 남의 돈을 거저 먹을 생각으로 블록체인에 뛰어들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어떻게 하면 가장 확장성 높은 알고리듬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금융 시스템과 송금 시스템을 마련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난민들에게 효과적인 신분 증명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부정이 끼어들지 않는 전자 투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하며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블록체인으로 바꾸어갈 것입니다.

좋은 의도에서든 나쁜 의도에서든 세상이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은 자명합니다. 블록체인이 만들어 갈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지금 미리 상정하는 것은 20년전 태어나지도 않았던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불가능하겠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있습니다. 적어도 가치의 인터넷이 만들어갈 세상에서는 가치의 분배는 보다 공평할 것이며 그 과정은 보다 투명할 것입니다. 세마포 블록체인 연구소가 지향하는 방향은 바로 이러한 미래에 대한 확신에 근거하여 다가올 미래를 차분히 준비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